역설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김숙경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양학부 특임교수)
하나 - 그리핀(Griffin)
그리핀은 독수리 머리에 사자의 몸통을 하고 등에는 날개가 달린 전설 속의 동물이다.
이 전설의 동물은 ‘황금의 수호자’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것은 이 동물이 본능적으로 황금이 매장되어 있는 곳을 알아내고, 황금을 발견하면 그것
으로 집을 짓되, 약탈자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가파른 절벽 중턱에 짓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고대인들은 금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해서
황금을 숭앙하고 황금으로 만든 장신구를 몸에 지니고 다니길 좋아했는데, 그것은 금의 재질이 영구불멸한데다가 금의 광채는 암흑과 불안을 몰
아내는 광명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원한 삶을 동경한 고대인들은 황금의 수호자 그리핀이 새겨진 장신구와 무기류를 부적처럼 몸에
지녔던 것이다. 특히 유목민족의 시조격인 스키타이인들은 그리핀을 그들만의 독특한 ‘스키타이 동물문양’으로 고안해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영원불멸을 상징하는 황금의 수호자 그리핀은 또한 죽은 사람을 명부(冥府)로 인도하는 ‘죽음의 사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조류도 포유류도 아니면서, 동시에 조류이기도 포유류이기도 한 전설의 동물 그리핀은 불멸을 상징하는 황금의 수호자이자 동
시에 죽음의 사자이기도 하다는 것인데, 그리핀 안에서 삶과 죽음은 이렇게 공존한다.
둘 - 모래더미 역설(Sand-pile paradox)
군지(郡司) 교수는 ppt자료를 사용해서 모래더미 역설을 강의하고 있다.
모래더미 역설은 두 개의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전제1) 모래더미는 많은 모래알로 구성되어 있다. 모래알은 모래더미의 부분이다.
전제2) 모래더미에서 모래알을 하나씩 떼어내도 모래더미는 계속 남아 있다.
그는 ppt를 작동해서 격자무늬로 도식화한 모래더미에서 모래알을 한 칸 한 칸 제거해나간다.
그리고 모래더미에서 모래를 한 알 한 알 제거해서 마지막에 한 알의 모래가 남으면
그것이 모래알인지 모래더미인지를 묻는다. 부분과 전체는 같아지므로 그것은 역설이다.
모래알(부분)과 모래더미(전체)의 공존!
셋- 물고기의 무리 이동과 패싸움
군지교수는 다시 ppt를 넘겨 이번에는 무리 이동하는 물고기 떼를 보여준다.
그는 묻는다. 자유를 담보하면서도 집단을 형성할 수 있는가?
무리 이동하는 물고기들은 수동적 움직임과 능동적 움직임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주변의 움직임에 자신의 움직임을 맞추는 것은 수동적 움직임이다.
큰 무리의 움직임은 그와 같은 수동적 움직임에 의해서 형성된다.
그런데 무리 이동을 하기 위해서는 수동적인 무리를 따르는 움직임 이외에도
서로간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무리 사이의 빈곳을 찾아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이때의, 움직임은 능동적 움직임이 된다.
이렇게 무리 전체를 보면 일제히 한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무리 안에는 다양한 움직임이 있다.
다양성을 포함하는 무리(Flock containing diversity)....
강의가 끝나고 집으로 오면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이를테면 패싸움도 마찬가지 아닌가... 조폭 한 무리가 떼 지어 다른 무리와 싸우러 간다.
한 무리가 다른 무리와 맞붙어 싸우는 것은 무리 안에서 수동적인 움직임이 된다.
그러나 무리가 만나서 패싸움을 할 때 각각 일대 일로 붙는 것은 능동적인 움직임이다. 이렇게 능동과 수동은 하나의 구조 안에서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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