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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난의 시대, 희망의 사유
이규성 『한국현대철학사론』
이규성의 이 역작은 부제(‘세계 상실과 자유의 이념’)가 말해 주듯이 세계가 상실되어 가는 상황에서 한국의 철학자들이 절실하게 모색했던 자유의 이념을 다루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의 문턱에서 서구를 지배한 것은 한편으로는 허무주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에의 맹신이었다. 이 점에서 현대의 출발점에는 모순이 놓여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과학기술의 힘으로 허무주의를 극복하려는 제국주의의 흐름으로 나타났고,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를 매개한) 이 흐름을 통해 ‘세계의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최제우(崔濟愚, 1824~1864), 최시형(崔時亨, 1827~1898)은 이런 상황을 “세계의 불안”으로 파악한바 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현대 한국 철학의 기본 이념이 탄생했고, 저자는 이를 곧 상실된 세계를 극복할 수 있는 ‘자유의 이념’이라고 간파한다. ‘해방의 이념’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유 구도에 입각해 저자는 저작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전개한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주로 일제시대의 사상들이 다루어지고 있으며, 동학과 대종교를 포함해 주로 종교적 성격을 띤 사상들이 논의된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한국 근대 철학사상에서 아마도 가장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을 변증법적 사상들이 다루어진다. 박종홍, 함석헌, 신남철, 박치우가 그 주인공들이다. 마지막 세 번째 부분에서는 ‘현실과 전망’이라는 제목 하에서 현대 한국 철학의 현실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저자의 사유가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이 저작은 구한말 이래 전개되어 온 한국 철학에 대한 ‘회고와 전망’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저작이 띠고 있는 중요한 의미들 중 하나는 현대 한국에서 전개된 철학사상들을 그 역사적 맥락에 위치 짓고서 논하고 있다는 점이다. 논리적 구성에 의한 사유가 아니라 역사적 서술에 입각한 사유이다. 그 중 기초적인 것은 구한말의 철학적 상황, 즉 이전의 전통 철학(특히 성리학)도 또 서세동점의 세력과 함께 밀려 온 서양 철학도 이 시대 한국의 상황에 대한 철학적 대안이 되기는 힘들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런 조건과 정세 때문에 이 시대의 창조적인 철학들은 대개 성리학적 교양을 갖추었고 서양 사상에도 일정한 영향을 받았으나 태생도 사상도 거기에 머물기보다 새로운 사유로 나아간 인물들에 의해서, 그리고 엄정한 철학적 분석보다는 삶의 고뇌에 대한 종교적 성찰에 몰두한 인물들에 의해서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현대 철학의 사유 틀이 기본적으로 ‘세계 상실과 자유의 이념’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였다. 이 시대의 철학자들이 처했던 문제는 민족이 처한 이런 고뇌의 시대를 맞이해 어떻게 희망의 사유를 제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런 맥락이었기에 당대(특히 일제시대)의 사유들은 대개 좁은 의미에서의 철학사상보다는 오히려 종교사상의 성격을 많이 띠곤 했다. 그 중에서도 동학은 민족이 처한 한계상황을 현실적으로 극복하기 힘든 상황에서 그 현실을 넘어선 무한자(無限者), ‘무극대도(無極大道)’를 사유함으로써, 현실의 고뇌에 힘겨워하는 민족에게 정신적 희망을 주고 도래할 시대를 위한 사상적 준비를 하도록 했다. 최제우, 최시형의 이런 비전은 특히 이돈화(李敦化)에 의해 철학적으로 개념화되었으며, 김기전(金起瀍)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동학사상을 근대적인 형태로 전개하기 위해 노력했다. 저자는 이렇게 동학을 한국 현대 철학의 시발점에 위치지우고 있다. 현실의 고뇌가 깊어지고 그 고뇌를 해결할 수 있는 객관적 여건의 마련이 거의 불가능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과 무한자를 직접 이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게 된다. 이때 인간의 내면은 객관세계(자연과 역사)보다도 더 넓은 광활한 진리의 장소가 되고, 객관세계의 규정성이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서 ‘무로부터의 창조’가 생기한다. 이는 곧 철학적 ‘개벽(開闢)’의 경지이다. 저자는 이런 경지가 동학이 추구했던 자유의 경지로 본다. 이런 경지가 확보될 때 불가능할 것 같았던 현실 타파의 길도 조금씩 열리게 되며, 이때 객관세계에서의 실천에의 길도 열리게 된다. 그리고 이 실천의 지향점은 곧 ‘광복(光復)’이었다. 대종교(大倧敎) 또한 ‘입헌공화제’라는 객관적 현실의 추구가 좌절되자 내면의 자각(‘한얼’에의 깨달음)과 미래에의 사유에 몰두했다는 점에서 동학과 궤를 같이 한다. 이기(李沂), 나철(羅喆), 김교헌(金敎獻), 서일(徐一) 등은 대종교의 뜻을 함께 하면서, 동학과 마찬가지로 내면에 대한 생기론적 깨달음(‘깊이의 심성철학’)을 추구하는 한편 교육과 독립운동을 통한 객관세계의 변형(‘희망의 역사철학’)을 추구했다. 이 역시 상실된 세계에서의 자유이념의 추구를 잘 보여준다. 당대의 이런 노력들은 무정부주의를 포함해 다른 여러 가지 형태들로 전개되었으며, 신채호(申采浩), 이회영(李會榮), 이건창(李建昌), 박은식(朴殷植)을 포함한 많은 인물들을 포함한다. 1926년 서울에 경성제국대학이 설치되면서 한국 현대 철학의 성격을 크게 변하기 시작한다. 이 시대 이후 한국 철학자들은 일본 철학자들을 통해서 서양 철학을 본격적으로 배우게 되며, 따라서 사유의 구도나 전개 방식, 어휘, 스타일 등등이 전면적으로 변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종래의 종교적 사유들(또는 ‘재야 철학들’)과 이후의 철학적 사유들(경성제대의 철학적 훈련을 거친 본격적인 철학들) 사이에는 적지 않은 간극에 만들어지게 된다. 만일 저자처럼 현대 한국 철학의 출발점을 동학으로 잡을 경우, 이 상황은 곧 동학과 현대 철학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간극은 지금까지도 메워지지 않고 있다. 어쨌든 1926년은 한국 현대 철학의 또 하나의 핵심적인 분기점이 된다. 박종홍(朴鍾鴻, 1903~1976)), 함석헌(咸錫憲, 1901~1989), 신남철(申南澈, 1907~1958), 박치우(朴致祐, 1909~1949)는 이 시대의 철학을 대표하는 인물들로서, 이들 사유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변증법’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점에서 ‘변증법’은 한국 근대 철학의 핵심적인 사유문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변증법은 플라톤이 제논의 역리를 ‘dialegesthai’(문답법)를 통해 극복 · 승화한 이래 서구 철학의 중요한 한 갈래를 이루어 왔으나, 현대 한국 철학자들의 변증법은 특히 헤겔과 마르크스의 변증법이라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헤겔과 마르크스 중 어느 쪽에 중점을 두느냐가 각 사상의 성격을 상당 부분 좌우했다고 할 수 있다. 박종홍, 함석헌이 헤겔적 변증법을 추구했다면, 박치우, 신남철은 마르크스적 변증법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철학자들의 사유가 변증법에 의해서만 규정될 수는 없으며, 변증법은 이들의 공통 사유문법일 뿐 그들의 고유한 개별성과 구체성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 박종홍은 민족의 신민지화와 해방, 그리고 근대사회 건설이라는 과정을 겪으면서 ‘창조의 논리’를 다듬게 된다. 그는 헤겔 변증법에 입각해, 당대의 부정적 상황을 다시 부정함으로써 창조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했다. 박종홍이 헤겔 변증법에 주안을 두고 마르크스 변증법을 물리친 것은 후자가 근대적 주체를 개념화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하이데거를 매개하는 향내적 사유를 향외적 사유와 더불어 한 축으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런 정향은 그로 하여금 「국민교육헌장」을 기초하는 등 박정희 정부와 밀착하게 만들었고, 노동자들을 위한 철학이 아니라 기업인들을 위한 철학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함석헌은 헤겔적 사유를 기독교사상의 맥락에서 전개한다. 함석헌은 시련이란 신이 자신의 뜻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인간에게 부여하는 시험이라는 『구약』의 역사형이상학을 일반화해, 그것을 헤겔적 목적론의 방식으로 전개했다. 이런 구도에 입각해 그는 역사를 자유를 향한 진보 과정으로 보는 헤겔적 역사철학을 물질의 타성을 극복하고 자유를 찾아가는 생명이라는 생명철학으로 전개했다. 이 생명이 근원이 모두에게 존재하는 ‘씨알’이며(이는 성리학의 성 개념의 새로운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이 씨알에의 깨달음을 통해 현실의 극복을 꾀하고자 했다. 이 점에서 그의 사유는 일제시대 종교사상들과 사유의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이전의 종교철학들이 그랬듯이, 그의 사유 역시 내면의 깨달음과 유토피아를 매개 없이(객관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탐구와 변형이 없이)이 이어버림으로써 사실상 현실세계에서 탈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신남철과 박치우는 이들과 달리 마르크시즘에 입각해 보다 구체적인 사회 변혁을 꾀했다. 이전의 종교적 철학자들이 설파했던 한울, 한얼, 씨알 등등의 개념들은 이들에 와서는 인문정신, 주체성, 또는 베르그송적 뉘앙스에서의 생명약동 등등의 보다 근대적이고 철학적인 개념들로 전환된다. 아울러 다분히 사변적인 수준에 머물렀던 예전의 실천정신은 좀더 구체적인 정치경제학적 사유로 대체되기에 이른다. 이는 곧 이전의 사상들에서 구체적으로 분석되지 못한, 그러나 근대적 삶에 있어 가장 먼저 분석되어야 할 개념들 중 하나라 할 자본주의가 이들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파악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나아가 자본주의에 대한 본격적 비판보다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흐름에 영합했던 박종홍과 달리, 이들에게서 비로소 당대 현실의 핵심 모순이 개념화될 수 있었음을 뜻하기도 한다. 저자는 3부에서는 오늘날의 철학을 진단하고 미래 철학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동북아 철학의 존재론은 기본적으로 무/무극으로부터 전개되는 “창조적 생기의 유희적 전개”이다. 따라서 서구 철학에서와는 달리 무 개념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모든 유를 보듬어주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것이며, 또한 모든 유가 그곳에서 나와 그곳으로 돌아가는 궁극의 터이다. 한국의 철학은 이런 전통 위에 서서 인문적 가치들이 통용되는 문화 창조를 이루어 갈 수 있으며, 민주경제와 민주정치라는 과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저자는 선철들의 사유를 이어받아 한편으로는 ‘내적 성실성’이 사유의 바탕이 되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적 충실성’이 실천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이 저작은 오늘날의 한국 철학이 낳은 걸작이며, 저자의 문제의식과 역량이 잘 녹아들어간 역작이다. 그러나 두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현대 한국 철학은 일본 철학과의 연계성을 떠나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본다. 우리에게 현대 철학이란 서구 철학의 영향을 떠나서는 설명하기 힘든 사유라 할 수 있고, 이 서구 철학은 일본 철학을 매개해서 우리 사유 속에 내장되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철학적 어휘 거의 전부가 일본 철학계에 의해서 번역된 것이며, 따라서 그 번역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현대철학사론』은 서구 철학과 한국 철학과의 연계성은 잘 설명하고 있으나, 일본 철학과의 연계성은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오히려 중국 철학과의 연계성은 간간히 다루어지고 있다) 앞으로 한국 근대 철학에 관한 논의에서는 서구, 일본, 한국의 삼자 관계가 좀 더 적극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이 저작은 오늘날 한국에서 산출되고 있는 거의 모든 저작들에게 해당되는 특징을 역시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1부에서는 주로 구한말에서 일제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종교적 철학들을, 2부에서는 일제시대로부터 근대 한국에 이르기까지 전개된 박종홍, 함석헌, 신남철, 박치우의 철학사상들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독자는 3부에서 이제 저자가 이 네 사람 이후에 전개된 한국 철학사상들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논의를 전개하리라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묘하게도 이 대목에서는 한국 철학자들은 거의 거론되지 않고 거의 외국 철학자들만이 참조되고 있다. 한국 철학자들에게는 동시대 철학자들과의 대화와 대결을 통한 사유 전개라는 것이 아직은 매우 낯선 무엇인 것 같다. 과거에 대한 역사적 논의와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을 뿐 바로 현재의 사유에 대한 눈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한국 철학도 뒤나 앞만을 바라보기보다 바로 옆을 바라보면서 사유하는 풍토로 전환해야 하지 않을까. 각자가 모두 앞과 뒤만 바라보면서 평행을 달리기보다는, 옆으로 기울어지는 ‘클리나멘’의 운동을 통해서 카오스모스의 운동을 일으키는 그런 사유가 지향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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