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 선 만남 깊은 공감 - 경의선
김숙경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양학부 특임교수)
우연히, 그리고 별반 기대 없이 보게 된 영화 ‘경의선’의 내용은 결코 복잡하지 않았다.
사랑의 배신에 상처받고 망연자실한 대학 강사 한 여자와, 철로에 뛰어든 사람을 치고 넋이 반 쯤 나간 기관사 한 남자가 무작정 경의선 열차에 몸을 싣고, 마지막 정거장에서 몰리듯 내린 곳은 남한의 최북단 임진강역! 폭설로 모든 교통편은 두절 되고, 되돌아 갈 하행선조차 끊긴 늦은 밤, 외딴 역사에 그렇게 모르는 두 남녀가 대책 없이 남겨졌다. 처음에는 낯 선 공간만큼이나 서로가 한없이 낯설어 촉수를 곤두세우던 두 남녀는 어느덧 한 마디 두 마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고, 마침내 더운 눈물과 순결한 포옹으로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준다.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여자가 우연히 올라탄 전철에서 귀에 익은 남자 기관사의 멘트를 듣게 되는 영화의 라스트 신은 담담하지만 자못 강한 여운을 남겨주었다.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다가올 새 해를 몇 시간 앞두고 나는 영화 경의선의 내용을 떠올리고 있다. 내가 그 영화를 본지도 벌써 삼 년이 지났다. 그러고 보면 두 남녀가 역사 벤치에 앉아있는 포스터부터가 웬지 시시해서 별 기대 없이 보았고, 내용도 단순하고 밋밋해서 금방 잊혀지려니 했는데 지금까지 기억 속에 있는걸 보면 은근 괜찮은 영화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줄거리와 상관없이 영화 속에서 어떤 느낌이나 메시지를 이끌어내는 것은 상당히 주관적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영화 경의선에서 읽은 메시지를 반추해보자면 이렇다.
인간은 누구나 나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겠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세계 어느 민족에게도 없는 공통의 상처 하나가 있다. 그게 남자건 여자건 부자건 빈자건 강자건 약자건 학자건 고자건 영자건 숙자건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공통의 상처, 바로 ‘분단’이라는 상처다. 영화 속 생면부지의 남과 여가 서로의 상처를 깊이 공감하며 진심어린 포옹을 나누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와 같은 정서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특별히 재회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남과 여가 한 열차에 몸을 싣고 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우리의 남과 북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당연히, 하나가 되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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